Updated 2025 8/20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은 존재의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만들며 혹은 찾으며 살아간다. 나는 ‘서사’가 의미를 형성하는 시스템이라고 보고 그 구조를 작업을 통해 탐구하고 있다.
내가 담는 화면에는 신화적 도상이 주로 등장한다. 내가 인용하는 신화는 본래의 목적성을 잃어버린 조각난 파편들이다. 그 부서진 조각들에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부여한다. 상징들을 파편화된 조각들로 호출하고 그것을 나의 개인적 경험과 직접 수집한 풍경 위에 덧입힌 허구적 장면에 배치한다.
‘모름의 세계’가 있고 ‘앎의 세계’가 있다면 전자는 모른 채, 평생을 알지 못한 채 걸어가는 삶, 후자는 앎에도 불구하고 해답을 모른 채 걸어가는 삶이다. 안다는 것에는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기에 둘은 결국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금방 사라진다.
현실의 틈 사이 계속해서 보이는, 보려고 하는 세계가 있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오래 머물러 잔존하는 것들에 눈길이 간다. 그렇기에 화면에 등장하는 도상들이 ‘신화적’인 것과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파편들에 아직 남아있는 고유한 존재감이 불안 - 삶을 살고자 하는 몸짓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워 담는 조각들을 엮어 그려내면 현실을 비집고 나온 순간의 스침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들을 분절된 서사이자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장면들로 그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