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고 영원한
나는 종교가 없지만 맹목적인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관심이 많다. 일로 바쁘셨던 부모님으로 인해 혼자 있던 시간이 유독 길었는데, 학부를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고 그 시기에 펜데믹이 겹쳐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타지 생활에서의 고립감과 불안을 견디기 위해 나는 자주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몰두하곤 했다. 무언가에 ‘몰입’, ‘몰두’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온정신이나 관심을 기울여 열중함을 뜻하고, 이 순간은 기존 세계를 잠시 잊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피 같기도 하다. 이 시기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과 항상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던 시기였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사물을 어떤 의미 맥락에서 탈피해서 바라보게 했기 때문에 사물은 기존의 기능이나 용도, 의미에서 떨어져 나와 나의 주관적인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구사하는 환경를 오고 가며 문득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선형적 서사의 연결 원리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 속의 시간적 흐름과는 다르게 내가 경험한 세계는 부유하듯 떠다니며 전혀 관계없을 것만 같은 이질적인 두 세계가 한데 뭉뚱그려진 곳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낸 후 나는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서사 구조와 무언가를 믿게 되는 현상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믿는다는 건 대상이나 현상 앞에서 판단을 중지하고 진리로 수용하는 태도, 개인적 심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사실은 아주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짜여진 구조에서 작동한다는 생각으로 부터, 몰입과 동일시를 가능하게 하는 서사 구조의 질서, 규칙, 조건을 회화 구조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구사하는 화면은 종교적 도상이나 신화적, 전설적 이야기의 구조를 빌려오지만 사건과 사건을 잇는 인과 관계가 생략되어 불완전한 서사를 형성한다. 이야기는 다소 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기승전결과 같은 선형적 읽기가 가능한 시간 구조를 의도적으로 탈피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인과성을 기반한 서사 구조를 명확하게 따르지 않으면서도 소통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한다. <끝과 시작>과 같은 같은 가로로 긴 형태의 평면 연작에서는 서사의 연속성, 시간적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두루마리 회화의 형태로부터 착안하였다. 두루마리는 동시병렬의 구조 안에서 같은 인물의 반복적 등장을 통해 한 편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풀어내는 데 비해 <끝과 시작> 연작은 나의 내적 경험에서 비롯한 사건들의 연속과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심상 등을 시각화한다. 따라서 화면 속 도상들은 엉뚱한 맥락에서 클로즈업 되거나 갑작스럽게 흐름을 깨는, 원근법을 따르지 않는 거리감의 변용으로 나타난다. 본 연작과 평면 작업은 동시병렬적이나 비선형적인 구조를 통해 시작과 끝이 모호한, 어쩌면 계속해서 지속되는 이야기가 된다.
<Watcher> 기둥형 회화 연작은 직접 제작한 자작합판 구조물 위에 장지, 순지를 배접하여 네 개의 면 전체를 화면으로 사용한 입체 회화이다. 이는 크고 단단한 형상으로 관람자 앞에 서있게 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굳건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마을을 지키던 수호신이나 장승의 형태에서 출발 하였다. 나는 타지에서 생활할 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내가 무탈하길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다. 바램은 보이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기인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힘을 갖는다. 본 연작은 믿음과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 시각화되며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선형적 흐름이 해체된 자리에서 이야기가 읽히는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되고 감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 관람자는 작품과 직접 대면하게 되며, 이로부터 서사의 읽기가 수동적 경험에서 능동적 경험, 감각, 각자의 해석으로 확장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2026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