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Updated 2025 9/13 


나는 변화하는 환경을 자주 겪으며 자라 왔다. 어느 날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의 이름, 그것의 역할, 쓰임, 용도, 규칙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벗겨지며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이 그저 존재하는 사물을 앞에 둔 느낌을 받았을 때 엄청난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 후로부터 우리가 덧씌워놓은 의미라는 것이 나에게 굉장히 주요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고, 나의 사고 방식이 안전한 쪽으로, 혹은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서로 연관이 없는 사건이나 사물들을 연결시켜 의미를 부여해 왔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게 된 후 한 개인을 이루는 기억과 맺히는 표상들, 내면에 계속해서 축적되는 것들이 모여 형성되는 의미란 무엇일지 생각했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잔존하는 것, 그것은 어떻게 잔존하게 되는 것인가? 문학(혹은 영화)에서 주로 영향을 받은 나는 그러한 의미화의 과정이 서사의 형태로 보편적으로 작용해왔으며,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무의미함과 반대지점에 있는 것을 계속 좇는 과정에서 서사의 원류가 되는 신화적 이미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듯한 인물들 - 신화에 나올법한 인물, 혹은 장편의 서사 중 한 장면같은 이미지들, 어떤 개인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의 모습들. ‘서사’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신화는 도피적 환상의 이미지라기 보다 은유적으로 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상의 반영에 가깝다. 그 속에서 마음 깊이 잠들어 있는 형상, 욕망, 비밀스러운 꿈 등을 서사의 한 장면에서 의도치 않게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리는 서사는 다양한 사건들을 지나오며 본 것들과 내게 체화된 것들을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포용하게 되는 과정들이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눈앞의 사물을 보고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혹은 어떤 특정한 기억으로 연관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건과 사건을 연결 지으려는 어떤 습관 혹은 심리가 작동한다. 그에 기반한 도상들이 뒤얽혀 동시다발적으로 화면을 메운다. 이러한 허구와 현실의 사건들이 나열되거나 겹쳐지며 한 화면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서사의 의미 형성 과정과 원리를 탐구해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